둘째 출산 후 급격히 심해진 건망증은 단순히 피로 때문이 아니다. 이는 ‘모성 뇌(Mommy Brain)’라 불리는 신경학적 재구조화 과정의 일부이며, 다자녀 양육이라는 고도의 멀티태스킹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뇌의 생존 전략으로 분석된다. 영구적인 인지 능력 저하가 아닌, 양육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일시적 변화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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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뇌’의 배신, 둘째 출산이 촉발한 기억력의 위기
첫째 아이를 키울 때와는 차원이 다른 혼란 속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심각한 건망증을 호소한다. 방금 하려던 말을 잊거나 중요한 약속을 놓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신의 뇌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는 단순한 기분 탓이나 피로 누적을 넘어선, 뇌 구조의 변화와 관련된 현상일 수 있다.
호르몬의 격변과 뇌의 재구성
출산 후 여성의 몸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극적인 호르몬 변화를 겪는다. 이 호르몬들은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Hippocampus)와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둘째 출산은 첫째 때 겪었던 변화에 더해,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더해져 호르몬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출산 후 여성의 뇌는 회백질(gray matter) 밀도가 일시적으로 감소하는데, 이는 사회적 인지 및 공감 능력과 관련된 영역이 재조정되는 과정이다. 이는 불필요한 정보를 가지치기하고 아기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뇌가 ‘리모델링’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다자녀 어머니의 78%가 ‘심각한 인지적 피로’를 경험한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뇌의 기능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휴대폰을 어디 뒀는지 잊는 것과 같은 단기 기억의 사소한 오류는 뇌 기능의 영구적 손상이 아니다. 오히려 아기의 표정, 울음소리와 같은 생존 신호에 집중하기 위해 뇌의 자원이 재분배되는 적응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아동 발달학적 관점에서 이는 어머니가 아기와의 상호작용에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진화한 결과이며, 양육 환경에 최적화된 뇌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멀티태스킹의 함정, 과부하 된 뇌의 비명

두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것은 한 아이를 키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인지적 부하를 요구한다. 뇌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과부하는 전두엽의 실행 기능을 저하시켜 건망증을 유발하는 핵심 기전으로 작용한다.
주의력 분산과 작업 기억의 한계
둘째의 기저귀를 갈면서 첫째의 숙제를 봐주고, 동시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상황은 다자녀 가정의 흔한 풍경이다. 인간의 뇌, 특히 주의력과 계획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이를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용량이라 부르는데, 지속적인 멀티태스킹은 이 용량을 초과하여 병목 현상을 일으킨다. 결국 뇌는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해 처리하지 못하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한 연구에서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때 각 과제의 수행 능력이 개별적으로 수행할 때보다 40% 이상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특정 업무나 대화에 집중할 때는 기억력에 문제가 없다면, 이는 뇌 자체의 손상이 아닌 과도한 정보 입력으로 인한 일시적인 처리 지연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의 본질은 기억력 자체가 아닌, 주의력을 통제하는 시스템의 과부하에 있다. 이는 마치 컴퓨터에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시켜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결책은 뇌의 성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육아 지원 정책 등을 활용해 인지적 부하를 줄여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회복을 위한 과학적 접근, 뇌 가소성을 믿어라
‘모성 뇌’ 현상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해도, 일상의 불편과 자존감 하락을 방치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인간의 뇌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 환경과 경험에 따라 스스로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킨다. 올바른 전략을 통해 저하된 인지 기능을 충분히 회복하고 오히려 강화할 수도 있다.
수면, 영양, 그리고 마음 챙김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재운 뒤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개인 시간을 갖느라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수면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고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특히 깊은 잠(NREM sleep) 중에 뇌척수액이 뇌를 순환하며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에게 하루 7~9시간의 수면을 권장하지만,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출산 후 1년 이내 여성의 평균 수면 시간은 5.4시간에 불과했다. 기억력 개선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수면의 양과 질을 확보해야 한다. 오메가-3, 콜린 등 뇌 기능에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5분이라도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 명상은 과부하 된 전두엽을 쉬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잘 쉬라’는 조언이 아니다. 뇌가 스스로 회복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리학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가장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다.
결론: 저하가 아닌 진화, 새로운 역할에 대한 뇌의 적응
둘째 출산 후 겪는 심각한 건망증은 뇌 기능의 영구적 손상이나 질병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두 아이의 생존과 발달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의 새로운 역할에 맞춰 뇌가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기 기억이나 절차적 기억 능력은 일시적으로 저하될 수 있지만, 아기의 미묘한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사회적 인지 능력은 오히려 발달한다. 이를 ‘문제’로 규정하고 자책하기보다, 다자녀 양육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뇌의 놀라운 적응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이 건망증은 언제쯤 나아지나요?
개인차가 크지만, 일반적으로 출산 후 1~2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양육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뇌의 신경가소성에 의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이전의 인지 기능으로 돌아온다.
건망증과 초기 치매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모성 뇌’로 인한 건망증은 주로 단기 기억이나 주의력 분산에 국한된다. 반면, 과거의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길을 잃거나, 익숙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면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또한 “왜 자꾸 잊어버려?”라고 비난하기보다, 메모나 알람을 함께 확인해주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줄여준다.
기억력 개선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가 있나요?
오메가-3 지방산(특히 DHA), 콜린, 비타민 B군 등은 신경세포막을 구성하고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영양제에 의존하기 전에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업무 복귀를 앞두고 있는데, 인지 능력이 회복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업무 환경이라는 새로운 자극은 뇌가 다시 일에 맞게 재구성되도록 촉진한다. 오히려 육아를 통해 발달한 멀티태스킹 능력과 공감 능력이 직장에서 새로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