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과정인 ‘마트레센스(Matrescence)’는 사춘기만큼이나 격렬한 정체성 혼란기이다. 이 시기 엄마의 심리적 불안정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초기 애착 형성과 뇌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이므로 과학적 이해와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은 그림자, 마트레센스의 실체
출산 후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겪는 가장 극적인 정체성의 전환, 즉 마트레센스를 통과하게 된다. 이는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뇌 구조의 재편, 사회적 역할의 재정의가 동반되는 복합적인 발달 과정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 시기에 낯선 자신과 마주하며 깊은 고립감과 혼란을 느끼지만, 사회는 이를 당연한 ‘모성애’의 일부로 치부하며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물학적, 심리학적 적응 과정이다.
호르몬의 격변과 뇌의 재구성
출산 직후 여성의 몸에서는 임신 기간 동안 최고조에 달했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절벽처럼 떨어진다. 이러한 급격한 호르몬 변화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극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감을 유발하는 생리학적 원인이 된다. 동시에 엄마의 뇌는 아이의 미세한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재구성되는데, 공감과 사회적 인지를 담당하는 편도체와 전두엽 피질 등의 영역에서 신경세포의 연결망이 재편되는 ‘시냅스 가지치기’가 일어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후 1년 이내 산모의 70% 이상이 유의미한 우울감을 경험하며 이는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닌 신체적·심리적 격변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모성 뇌’로의 변화는 아이 양육에 최적화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시적인 인지 저하(Mommy Brain)나 정서적 불안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엄마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종족 보존을 위한 뇌의 놀라운 적응 기전이다.
엄마의 혼란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애착 이론의 경고

태어나서 첫 1년, 영아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와 같다. 아이는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이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곳인지,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를 내면화하며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엄마의 정서적 안정성은 아이의 뇌 발달과 평생의 관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트레센스 시기의 혼란으로 인해 엄마가 일관성 없는 반응을 보이거나 정서적으로 무감각해진다면, 아이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결코 엄마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정신 건강이 곧 아이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안정 애착의 씨앗, 일관성의 붕괴
정체성 혼란에 빠진 엄마는 아이의 요구에 때로는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반응하는 등 감정의 진폭이 커지기 쉽다. 아이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고, 이는 불안정 애착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존 보울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주 양육자가 자신의 요구에 민감하고 일관되게 반응해 줄 때 ‘안전 기지’를 형성하고 세상을 탐색할 용기를 얻는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환경은 아이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양육 가이드라인에서도 강조하는 바이다. 엄마의 완벽함이 아닌 예측 가능한 안정성이 아이의 두뇌와 정서 발달의 핵심이다. 따라서 엄마 자신의 혼란을 먼저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책임감 있는 행동이 된다.
혼란을 성장의 기회로, 마트레센스 극복 전략
마트레센스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기존의 자아와 통합하여 더 확장된 나로 성장하는 기회이다. 이 시기를 위기가 아닌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개인적 차원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멈추고,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가 된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엄마가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며, 혼자서 감당해야 할 짐이 아니다.
‘나’를 잃지 않는 엄마 되기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지 않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 지속 가능한 양육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험은 소진된 에너지를 채우고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배우자나 지역사회로부터 정기적인 정서적·물리적 지원을 받는 산모는 산후우울증 발병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확대된 정부의 부모급여 정책 역시 이러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좋은 예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엄마가 아이에게 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이름, 엄마라는 정체성의 재구성
마트레센스는 질병이나 문제가 아닌, 한 여성이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사춘기 청소년이 겪는 혼란을 비정상이라 말하지 않듯, 엄마가 되는 과정의 방황 역시 성장을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시기의 혼란과 고통은 뇌가 아이에게 최적화된 양육자로 변화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따라서 죄책감 대신 자신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엄마와 아이의 미래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마트레센스는 언제까지 지속되나요?
개인차가 매우 크지만, 일반적으로 임신 기간부터 시작하여 출산 후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됩니다. 명확한 종료 시점이 있는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과 자아에 적응해 나가는 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산후우울증과 마트레센스는 어떻게 다른가요?
마트레센스는 모든 엄마가 어느 정도 경험하는 정상적인 정체성 전환 과정입니다. 반면 산후우울증은 일상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지속적인 우울감, 무기력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임상적 질환입니다.
남편(파트너)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해결’해주려 하기보다 ‘공감’해주는 태도입니다. 아내가 느끼는 감정의 혼란을 정상적인 과정으로 인정해주고, 실제적인 육아와 가사 분담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엄마 되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마트레센스는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기존의 자아와 통합하여, 이전보다 더 다채롭고 성숙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정체성 혼란이 아이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엄마가 자신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전문가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줍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건강한 대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훨씬 긍정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