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출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한 ‘본능’이라는 주장과 사회문화적 압력 속에서 길러지는 ‘학습’이라는 주장으로 나뉜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과 발달심리학 연구들은 모성애가 둘 중 하나의 문제가 아닌, 생물학적 기반 위에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복합적 과정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아이의 두뇌 발달을 결정하는 핵심은 ‘본능의 유무’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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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라 불리는 모성애, 그 과학적 실체
아이를 낳으면 자동적으로 숭고한 사랑이 샘솟는다는 ‘모성 본능’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신화와 같다. 이 믿음은 여성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남성에게는 부재하는 특별한 능력처럼 여겨지며 때로는 과도한 부담감과 죄책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강렬한 감정의 이면에는 매우 정교한 생화학적 기전이 작동하고 있다.
옥시토신, 모성 행동의 스위치를 켜다
출산과 수유 과정에서 여성의 뇌는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과 프로락틴을 대량으로 분비한다. 이 호르몬들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여 아기와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아기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새끼를 낳은 포유류 암컷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모성애의 생물학적 뿌리가 존재함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러나 호르몬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모 10명 중 5명(52.6%)이 산후우울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호르몬만으로 모성애의 모든 측면을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호르몬은 관계 형성을 위한 ‘초대장’일 뿐,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심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모성애는 사회가 만든 ‘각본’인가

생물학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성애의 다른 한 축에는 사회문화적 학습이 자리한다. ‘엄마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규범은 여성의 양육 방식과 감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모습이 끊임없이 변화해 온 ‘만들어진 감정’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낳는다.
시대와 문화가 요구하는 어머니상
‘지극정성’, ‘무한한 희생’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어머니상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념이다. 과거 대가족 사회에서는 공동 양육이 보편적이었으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양육의 책임은 온전히 어머니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압박은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져 많은 여성이 정서적 탈진을 경험하게 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양육 스트레스는 부모의 정신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아동 학대로 이어질 위험을 높인다. 만약 모성애가 순수한 본능이라면, 이토록 사회적 환경에 따라 고통받고 변질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모성애가 타고나는 감정을 넘어, 사회가 제시하는 각본을 내면화하고 수행하는 과정임을 방증한다.
‘결정적 시기’의 상호작용, 뇌 발달을 좌우한다
모성애 논쟁의 핵심은 본능이냐 학습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아이의 발달에 어떤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다. 영유아기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주 양육자가 제공하는 안정적이고 민감한 상호작용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제목에서 언급된 ‘뇌 손상’은 바로 이 상호작용의 부재가 낳는 비극적 결과를 의미한다.
애착 이론으로 본 모성애의 진정한 의미
정신분석학자 존 보울비의 애착 이론은 모성애의 본질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 주 양육자에게 애착을 형성하려는 선천적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때 양육자가 아이의 요구(울음, 미소, 옹알이 등)에 얼마나 일관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지가 안정 애착 형성의 관건이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내면에 쌓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강조하듯, 영유아기의 방임이나 학대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은 뇌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 학습 능력과 정신 건강에 장기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결국 모성애의 진정한 가치는 신비로운 감정이 아니라, 아이의 두뇌 발달을 최적화하는 구체적인 ‘양육 행동’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결론: 본능을 넘어 ‘관계 맺음’의 기술로
모성애는 선천적 본능과 후천적 학습이 정교하게 얽힌 복합적인 현상이다. 옥시토신이라는 생물학적 엔진이 초기 시동을 걸어주지만, 그 관계를 안전하게 항해하게 하는 것은 사회 속에서 배운 양육 기술과 아이의 신호에 반응하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따라서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가’라는 자책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나는 아이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아이의 뇌는 신비로운 본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따뜻한 상호작용을 먹고 자란다. 그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주체가 엄마든, 아빠든, 혹은 다른 양육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주 묻는 질문
아이를 봐도 사랑스러운 감정이 바로 안 생기면 문제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 출산 직후의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극심한 피로는 정서적 유대감 형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 안정 애착은 순간의 감정이 아닌, 시간을 두고 일관된 돌봄을 통해 쌓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빠나 다른 양육자도 ‘모성애’를 가질 수 있나요?
‘모성애’라는 단어에 갇힐 필요가 없다. 아이의 뇌 발달에 결정적인 것은 성별에 따른 감정이 아닌 ‘주 양육자의 민감한 반응성’이다. 아빠 역시 아이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얼마든지 깊고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모성애가 부족하면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기나요?
‘모성애’라는 감정의 크기보다 ‘안정 애착’ 형성 여부가 훨씬 중요하다. 양육자의 일관성 없는 반응이나 방임으로 인해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직장맘이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죄책감이 듭니다.
양육의 질은 시간의 절대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눈을 맞추고 반응해주는 것이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 안정 애착 형성에 훨씬 효과적이다.
모성애를 키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할 점이 있을까요?
모성애를 ‘키운다’기보다 아이와 ‘관계를 맺는 기술’을 익힌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아이가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배우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부모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먼저 돌보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