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를 당연한 본능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오히려 엄마와 아이의 건강한 애착 관계를 위협하는 ‘정서적 학대’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제기된다. 뇌과학과 아동 발달학은 모성애가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의 작용을 넘어, 부모의 양육 경험과 사회적 지지를 통해 완성되는 학습된 행동 패턴에 가깝다고 지목한다. 이 과정에 대한 오해는 부모의 죄책감을 가중시키고 아이의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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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신화’의 배신, 뇌과학이 밝혀낸 불편한 진실
대부분의 예비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마법처럼 사랑이 샘솟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며, 이러한 기대는 많은 엄마들을 좌절과 죄책감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현대 과학은 모성애가 신비로운 본능이 아닌, 복잡한 생화학적·심리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옥시토신, 사랑의 묘약인가 조건의 산물인가
출산과 수유 과정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며 애착 형성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호르몬은 아기에 대한 보호 본능과 친밀감을 높이는 생리적 기반을 마련한다. 하지만 옥시토신이 모성애의 전부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스위치는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산모의 스트레스 수준, 신체적 컨디션,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과거 양육자와의 애착 경험 등이 옥시토신 분비와 수용체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긍정적이고 지지적인 환경이 갖춰질 때 호르몬이 제 기능을 하는 조건부 촉진제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옥시토신은 사랑이 아닌 경계심과 공격성을 높이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준비되지 않은 모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엄마라면 당연히’라는 사회적 압박은 엄마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불신하게 만든다. 아이에게 즉각적인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이는 산후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모 10명 중 1명이 산후우울감을 경험하며, 이는 방치될 경우 아이의 정서 발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영유아기 애착은 아이의 뇌가 타인과 세상을 신뢰하는 방식을 배우는 결정적 과정이다. 엄마의 우울과 불안은 아이에게 일관성 없는 양육 태도로 이어지고, 이는 아이에게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며 불안정 애착을 형성할 위험을 높인다.
통계가 드러낸 양육 환경의 그림자
모성애가 본능이라는 신화는 양육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위험한 함정을 내포한다. 양육은 한 사람의 본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도의 노동이며,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부재할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양육자의 스트레스와 아동의 발달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의 아동학대 관련 보고서들은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와 사회적 고립이 아동학대의 주요 원인임을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본능이라는 이름 아래 ‘알아서 잘할 것’을 강요받는 엄마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고립된다. 이것이 바로 모성 신화가 가진 가장 어두운 단면이다.
본능을 넘어 ‘과학적 모성’으로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해답은 모성애를 타고나는 본능이 아닌, 배우고 실천하는 ‘유능감’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에 있다.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학습된 사랑’이 더 견고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애착 형성의 골든타임,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
생후 초기 몇 년은 아이의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로, 이때 부모와의 상호작용은 아이의 사회성, 감정 조절 능력의 기초를 다진다. 눈을 맞추고, 미소에 반응하고,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응답하는 모든 행동이 아이의 뇌에 긍정적인 회로를 각인시킨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영유아 건강 가이드라인 역시 약물이나 특별한 기술이 아닌, 부모의 ‘반응적 돌봄(Responsive Caregiving)’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적절히 반응해주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으로 인식하며,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모성애, 신화에서 현실로의 전환
모성애는 신이 내린 성스러운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연약한 인간을 돌보며 겪는 혼란, 기쁨, 좌절, 그리고 헌신이 뒤섞인 매우 현실적인 관계 맺음의 과정이다.
모성애가 본능이라는 낡은 프레임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그 자리는 아이의 발달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부모의 노력을 존중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채워져야 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행동이며, 그 행동은 충분히 학습하고 연습할 수 있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고 신화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때로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끊임없이 배우고 아이의 신호에 반응하려 노력하는 현실의 양육자이다. 그 노력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건강한 모성은 완성된다.
자주 묻는 질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면 문제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다. 출산 직후의 감정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신체적 고통,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이와의 유대감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며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옥시토신 호르몬이 부족하면 모성애가 없다는 뜻인가요?
옥시토신은 애착 형성을 돕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안정적인 환경, 충분한 휴식, 파트너의 지지, 그리고 아이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얼마든지 건강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모성애가 학습이라면, 아빠도 똑같이 형성할 수 있나요?
물론이다. 아빠 역시 아이를 돌보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옥시토신과 같은 애착 관련 호르몬이 분비된다. ‘주 양육자’로서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관된 돌봄을 제공한다면, 엄마와 동일한 수준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과학적 육아’가 엄마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과학적 육아는 비현실적인 기대로부터 엄마를 해방시킨다. 모든 감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아이의 발달에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에 집중하도록 도와 엄마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모성애를 키우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눈을 맞추고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이를 안고 심장 소리를 들려주거나,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언어로 표현해주는 것이 훌륭한 상호작용이다. 거창한 목표 대신 작고 꾸준한 실천이 애착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