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여정, ‘마트레센스(Matrescence)’는 단순한 호르몬 변화가 아닌 뇌 구조와 정체성이 재편되는 거대한 발달 과정이다. 이 시기 남편의 무관심과 오해는 아내를 고립시킬 뿐 아니라, 아이의 정서 및 인지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환경 변수로 작용한다. 과학적 이해에 기반한 남편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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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레센스’, 단순한 산후우울증이 아니다
출산 후 아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사소한 일에 눈물을 보이거나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많은 남편들이 당혹감을 느낀다. 이는 의지박약이나 성격 변화가 아닌, 인류학자 다나 라파엘이 명명한 ‘마트레센스’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증상이다.
사춘기(Adolescence)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이듯, 마트레센스는 한 여성이 어머니로 재탄생하며 겪는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총체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를 병리적인 산후우울증과 혼동하는 사회적 무지는 여성에게 부당한 죄책감과 고립감을 안겨준다.
아내의 뇌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재편 과정
아내가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지고 불안을 호소하는 것은 뇌가 아기를 돌보는 데 최적화된 상태로 재설계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실제로 출산 후 여성의 뇌는 감정 반응을 주관하는 편도체와 계획 및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의 활동성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구조적 변화를 겪는다. 이는 아기의 미세한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문제’로 인식하는 주변의 반응이다. 남편이 아내의 변화를 예민함으로 치부하고 비난할 때, 아내의 뇌는 이를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받아들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여러 보고서에서 배우자의 정서적 지지 수준이 산모의 스트레스 지수와 직접적인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따라서 남편의 반응은 아내의 뇌가 안정적으로 모성에 적응할지, 아니면 만성적인 불안 상태에 머무를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적 변수가 된다. 이 변화를 결핍이 아닌 적응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편의 ‘무지’가 만드는 비극적 결과

남편의 역할은 단순히 기저귀를 갈고 집안일을 돕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 시스템을 구축하는 핵심 설계자로서, 남편이 마트레센스를 이해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게 아내와 아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는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생리학적 결과로 이어진다.
엄마의 스트레스는 보이지 않는 탯줄을 통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엄마의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분비된다. 아이는 엄마의 긴장된 표정, 불안한 목소리, 경직된 스킨십을 통해 이러한 스트레스를 흡수하며, 이는 아이 자신의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 발달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 호르몬, 탯줄 없이도 전달된다
아이가 유독 보채고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남편들은 엄마의 양육 기술을 탓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현상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아이의 까다로운 기질은 엄마의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비추는 거울일 가능성이 높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아기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와 부부관계’ 연구에 따르면, 출산 초기 부부 갈등이 높은 가정의 영아는 기질적으로 더 예민하고 까다로운 특성을 보일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이는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달되어 안정적인 애착 형성을 방해하고, 아이의 정서 조절 능력 발달의 기틀을 흔든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남편의 지지적 태도는 엄마의 스트레스를 막는 방패막이자, 아이의 두뇌 발달을 지키는 최전선인 셈이다.
결국 아이가 보이는 문제 행동의 원인을 엄마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보다는 부부 관계와 가족 전체의 정서적 안정성을 점검하는 것이 훨씬 더 근본적인 해법이다.
‘공동육아’ 구호에 가려진 핵심
최근 ‘공동육아’라는 말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남편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분리수거, 아이 목욕 등 물리적 가사 노동 분담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마트레센스 시기에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가사도우미’가 아닌 ‘정서적 동반자’이다.
아내는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겪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기저귀 갈았으니 당신은 젖병 씻어”와 같은 거래적 소통이 아니다. “엄마가 된 당신, 낯설고 힘들 텐데 정말 대단하다”는 존중과 공감의 언어이다.
보건복지부의 가족실태조사 데이터는 부부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가사 분담률 자체가 아닌, 배우자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의 ‘인식 수준’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의 조력자가 아닌, 이 거대한 변화의 여정을 함께 탐험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동육아의 진정한 본질이다.
결론: 위대한 여정의 첫 번째 동반자
마트레센스는 여성 혼자 겪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이는 한 가족이 재탄생하는 과정이며, 이 여정에서 남편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핵심적인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지와 공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육아 도구이다.
아내의 변화를 문제나 위기로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한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그 선택은 남편의 이해 수준에 달려 있으며, 그 결과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최종적인 양육 환경을 구성하는 책임과 선택은 부부 공동의 몫이다.
자주 묻는 질문
아내가 너무 예민해져서 대화가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내의 예민함은 호르몬과 뇌 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생리적 반응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거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와 같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적극적 경청’ 자세가 필요하다.
저도 아빠가 처음이라 힘든데, 아내만 챙겨야 하나요?
남성 역시 아빠가 되며 ‘파트레센스(Patrescence)’라는 정체성 변화를 겪는다.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아내와 함께 지지 기반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만,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변화의 강도는 여성이 훨씬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되, 이 시기에는 아내의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후우울증과 마트레센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마트레센스는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면서 겪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다. 반면 산후우울증은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한 임상적 질환으로,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2주 이상 지속되는 특징을 보인다. 다만, 마트레센스 시기에 적절한 지지를 받지 못하면 산후우울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커진다.
구체적으로 남편이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물리적인 도움을 넘어, 아내가 최소 3~4시간의 연속적인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밤중 수유나 돌봄을 전담하는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부모나 친지 등 외부의 불필요한 조언이나 비판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는 ‘가족의 문지기’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핵심적인 역할이다.
언제쯤 아내의 상태가 안정될까요?
마트레센스는 질병이 아니므로 완치나 회복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이는 새로운 정체성에 적응해가는 과정으로, 개인차가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안정적인 환경이 뒷받침될 때, 출산 후 1~2년 내에 새로운 엄마로서의 역할에 안정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