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출산 후 찾아온 극심한 건망증은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두 아이 양육이라는 고도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뇌가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이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와 인지적 과부하가 결합된 이 현상은 질병이 아닌, 효율적인 양육을 위한 뇌의 적응 기전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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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 브레인’의 과학적 실체, 두 번째는 다르다
첫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엄마들이 많다. 방금 들은 말을 잊거나, 약속을 놓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혹시 심각한 질병은 아닌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겪는 지극히 보편적인 경험이다.
호르몬 변화와 뇌의 재구성
출산 후 여성의 몸은 ‘어머니’ 역할에 최적화되기 위해 극적인 호르몬 변화를 겪는다. 애착 형성에 관여하는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수치가 급증하는데, 이 호르몬들은 뇌의 특정 영역, 특히 기억과 집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해마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뇌 과학 연구들은 이 시기 엄마의 뇌에서 일부 회백질이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는 뇌 기능의 퇴화가 아니라, 불필요한 신경망을 가지치기하고 아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뇌 회로를 효율적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즉, 엄마의 뇌는 아기의 생존과 발달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두 아이 양육, 인지 과부하의 임계점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단순히 ‘일이 두 배’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발달 단계에 있는 아이들의 요구를 동시에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므로, 부모의 뇌는 끊임없이 멀티태스킹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지속적인 인지적 부담은 뇌의 처리 용량을 초과하여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멀티태스킹의 함정과 수면 부족
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다른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동시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한 번에 하나의 고차원적 작업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빈번한 과제 전환은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작업 기억(working memory)에 심각한 부하를 준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유아 부셔모의 양육 스트레스 연구’에 따르면, 다자녀 부모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남짓으로, 절대적인 수면 부족이 뇌의 정보 처리 및 기억 저장 능력을 저하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뇌가 과부하 상태에서 생존에 직결된 정보(아이의 안전, 수유 시간)를 우선 처리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지인의 이름, 사소한 약속)는 쉽게 잊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소진이 미치는 영향
신체적 피로만큼이나 정신적, 정서적 상태 역시 인지 기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 출산 후에는 첫째 때보다 주변의 지원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고립감이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정서적 소진은 기억력 감퇴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원 시스템의 부재와 우울감
주변에서는 ‘이미 한 번 해봤으니 잘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줄어든 사회적 지지 속에서 가중된 양육 부담은 엄마를 쉽게 무력감에 빠뜨린다. 보건복지부의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모 10명 중 4명 이상이 우울감을 경험하며, 이는 다자녀 산모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산후 우울증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집중력 저하와 건망증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우울감과 함께 기억력 문제가 심각하다면, 이는 단순한 ‘마미 브레인’을 넘어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신호일 수 있다. 정서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현명한 대처, 비난이 아닌 이해에서 시작된다
둘째 출산 후 겪는 건망증은 뇌 기능의 영구적 손상이나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다. 이는 두 아이의 양육이라는 고도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뇌와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시기를 ‘결함’이 아닌 ‘변화’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인지적 과부하를 줄이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자신의 정서적 건강을 돌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최종적인 양육의 질은 부모의 건강한 심신에서 비롯된다.
자주 묻는 질문
이 건망증은 언제쯤 나아지나요?
개인차가 크지만, 일반적으로 둘째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양육 부담이 줄어드는 생후 1~2년 내에 점차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뇌의 재구성이 안정화되고 수면 패턴이 정상화되는 시점과 관련이 깊다.
기억력 개선을 위해 영양제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오메가-3, 비타민 B군, 철분 등은 뇌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영양제에 의존하기보다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문의와 상담 후 복용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편도 비슷한 증상을 겪을 수 있나요?
그렇다. 아빠들 역시 급격한 환경 변화, 수면 부족, 양육 스트레스로 인해 비슷한 인지 저하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를 ‘대부 증후군(Paternal Postnatal Depression)’의 일부 증상으로 보기도 하며, 부부가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망증과 초기 치매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출산 후 건망증은 주로 단기 기억이나 집중력 저하에 국한되며, 힌트를 주면 기억해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치매는 경험 전체를 잊어버리거나 판단력, 언어 능력 등 다른 인지 기능의 동반 저하를 보인다. 증상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거나 악화된다면 신경과 진료가 필요하다.
기억력 저하를 완화할 구체적인 생활 습관이 있을까요?
스마트폰 앱이나 메모장을 활용해 중요한 일정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잠들기 전 30분 정도 명상이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뇌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짧더라도 질 좋은 수면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도움이 된다.
